
고속도로에서 차량 5대가 잇따라 부딪혀 2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사고의 운전자가 주행 보조 장치를 켠 채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달 12일 낮 전북 장수군 통영대전고속도로 하행선에서 40대 운전자가 몰던 SUV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앞쪽 차량 3대가 연달아 추돌했다.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60대와 70대 남성 2명이 숨졌고, 다친 사람 가운데 2명은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운전자는 경찰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을 켜고 운전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설정 속도는 시속 125㎞였다고 한다. 그 구간의 제한속도는 시속 100㎞였고, 인근에서는 터널 공사로 차량들이 서행하던 중이었다. 다만 실제 주행 속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운전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상 혐의로 입건하고 블랙박스와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겼다. 운전자도 크게 다쳐 아직 피의자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행 보조 장치가 흔해지면서 "기계가 알아서 줄여 줄 줄 알았다"는 말이 사고 현장에서 자주 나온다. 그 말이 법정에서 통하는지, 사고의 당사자들은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짚어 본다.
1. 적용되는 법과 형량
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면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피해자가 여럿이면 피해자마다 죄가 성립하고, 형을 정할 때도 그 결과의 무게가 반영된다.
나. 사망 사고에는 특례가 없다
같은 조 제2항은 피해자가 다치기만 한 경우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한다. 종합보험에 가입했으면 처벌을 면하는 특례도 이 치상 사고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숨진 사고에는 이런 특례가 없어 합의나 보험 가입과 상관없이 재판에 넘겨질 수 있다. 치상 피해자에 대해서도 제한속도를 시속 20㎞ 넘게 초과해 운전한 경우(제2항 제3호)처럼 이른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 대상이 된다. 이번 사고에서 설정 속도는 제한속도보다 25㎞ 높았지만, 중과실 여부는 설정값이 아니라 EDR로 확인되는 실제 속도로 판단한다.
2. 주행 보조 장치를 켰다면 책임이 줄어드나
가. 운전자의 주의의무는 그대로다
도로교통법 제19조 제1항은 앞차가 갑자기 정지하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라고 정하고, 제48조 제1항은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하고 교통상황에 따라 위험을 주지 않는 속도와 방법으로 운전하라고 정한다. 이 의무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운전자다. ACC는 설정한 속도와 차간거리를 유지하도록 돕는 장치일 뿐 전방 주시를 대신하지 않는다. 장치를 켰다는 사실은 책임을 덜어 주는 사정이 아니라, 앞이 막힌 공사 구간에서 왜 직접 속도를 줄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나. 법원의 판단
제한속도 안에서 달렸다는 것도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야간 고속도로 사고에서 이렇게 판단했다.
대법원 1999. 1. 15. 선고 98도2605 판결야간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사람은 노면상태와 가시거리 등에 따라 고속도로의 제한최고속도 이하로 감속·서행할 주의의무가 있으며, 선행사고로 정차해 있던 차량과 사람을 들이받은 운전자에게 감속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
판결의 요점은 제한속도가 상한일 뿐 안전한 속도를 보장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사로 차량들이 서행하는 구간이라면 운전자는 그 상황에 맞춰 속도를 낮춰야 하고, 장치에 맡겨 둔 설정 속도가 그 의무를 대신하지 못한다.
3. 사고 당사자가 챙길 것
가. 피해자와 유족이라면
먼저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현장 사진, 다친 경위를 보여 주는 진료기록을 확보한다. 배상은 가해 차량의 보험사에 직접 청구할 수 있고, 사망 사고라면 위자료와 장례비 외에 숨진 사람이 앞으로 벌었을 수입(일실수입)이 주요 항목이 된다. 연쇄 추돌에서는 차량마다 과실이 얽혀 보험사끼리 책임을 미루는 일이 있으므로, 수사기관의 EDR 분석 결과와 사고 경위가 정리된 뒤 과실 비율을 따져 보는 편이 안전하다. 형사 절차에서는 피해자로서 의견을 진술하고 사건 기록 열람·복사를 신청할 수 있다.
나. 가해 운전자라면
첫 진술이 사건의 방향을 정한다. "장치를 켜 두었다"는 말은 사실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한다. 장치가 실제로 감속했는지, 경고가 있었는지, 앞차가 어떻게 멈췄는지를 EDR과 영상으로 확인한 뒤 진술해야 한다. 장치 결함이 의심되면 차량을 함부로 수리하거나 폐차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해 감정을 요청한다. 사망 사고는 합의로 처벌을 피할 수 없지만, 유족에 대한 진지한 피해 회복은 형을 정할 때 중요한 사정이 된다. 사망 사고는 운전면허 행정처분도 무겁게 따르므로 형사와 행정 절차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4. 맺으며
주행 보조 장치는 운전을 편하게 해 주지만, 사람을 대신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차량 판매와 광고 과정에서 장치의 한계가 충분히 설명되는지, 공사 구간처럼 장치가 오작동하기 쉬운 곳에서 운전자에게 경고를 주는 장치가 있는지도 함께 점검할 때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발이 브레이크 위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그대로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0.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글 신동우 대표변호사 · 2026.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