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치 8주의 교통사고를 내고 경찰 조사를 받던 운전자가 불과 엿새 만에 또 사고를 냈다. 이번에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50대 보행자를 들이받았고, 피해자는 숨졌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이 운전자에게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과 준법운전강의 수강 40시간을 선고했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첫 사고의 치상 혐의는 피해자와 합의해 공소가 기각됐고, 사망 사고에 대해서는 유족과 합의한 사정이 참작돼 실형을 피했다. 같은 운전자의 두 사고가 법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교통사고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1. 사고 두 건, 왜 결론이 달랐나
가. 진로 변경 중 치상, 합의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을 범하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이 가운데 치상죄에 대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반의사불벌이다.
첫 사고는 차로를 바꾸다 직진하던 오토바이를 친 사고였다. 단서에 열거된 12개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 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재판이 계속될 수 없다. 법원이 이 부분 공소를 기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 사망 사고는 합의해도 처벌된다
반의사불벌 특례는 치상죄에만 적용된다. 피해자가 숨진 경우에는 유족과 합의해도 공소가 기각되지 않는다. 합의는 양형에서 참작될 뿐이다. 이번 판결도 유족의 처벌불원을 집행유예의 이유로 들었을 뿐 유죄 판단 자체는 바꾸지 않았다.
다. 횡단보도 사고는 12대 중과실에 들어간다
설령 피해자가 살아 있었더라도 결론은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6호는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 따른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한 경우를 처벌 특례의 예외로 정하고 있다. 횡단보도 위 보행자를 친 사고는 피해자와 합의해도,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운전자는 어디까지 멈춰야 하나
가. 먼저 진입했어도 멈춰야 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차가 먼저 들어섰으니 지나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운전자가 적지 않다. 대법원의 생각은 다르다.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0도17724 판결운전자는 보행자보다 먼저 신호기 없는 횡단보도에 진입한 경우에도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지 않거나 통행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 아니면 일시정지하는 등 보행자의 통행이 방해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화물차 운전자는 우회전하며 횡단보도에 먼저 들어섰고, 뛰어 건너던 14세 학생이 적재함에 부딪혀 다쳤다. 대법원은 일시정지하지 않은 채 통과한 행위를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으로 보고 특례법 단서 제6호를 적용한 원심을 유지했다.
나. 낮 시간, 전방주시 소홀은 변명이 되기 어렵다
이번 통영 사건에서 법원은 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피해자를 보지 못하고 전방주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과실이 매우 크다고 했다. 시야가 트인 시간대의 횡단보도 사고에서 보지 못했다는 해명은 오히려 과실을 드러내는 사정이 된다.
3. 사고를 낸 운전자가 알아야 할 것
가. 수사 중 재범은 양형에서 가장 무겁게 본다
법원은 범행 약 일주일 전에 사고를 내고도 자숙하지 못했다는 점, 동종 전과가 있다는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짚었다. 첫 사고로 조사를 받는 중이라면 운전을 최소화하고 운전 습관을 점검하는 것이 형사적으로도 가장 확실한 대비다. 집행유예 기간 중 같은 사고를 내면 이번처럼 유예를 기대하기는 훨씬 어렵다.
나. 합의는 서두르되 내용을 정확히 남긴다
치상 사고에서 처벌불원 의사는 공소 제기 여부를 바꾼다. 사망 사고에서도 유족의 처벌불원은 금고형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합의서에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 합의금과 보험금의 관계, 민사상 추가 청구 여부를 분명히 적어야 나중에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운전면허 처분이 따른다
인명 피해가 있는 사고는 벌점과 면허 정지·취소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사 절차가 끝났다고 행정처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처분 통지가 오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 기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4. 피해자와 유족이 챙길 것
보행자 사고의 피해자 측은 우선 사고 지점이 횡단보도 안이었는지를 확인할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블랙박스와 주변 CCTV는 보존 기간이 짧아 며칠 안에 사라질 수 있으니 사고 직후 경찰에 보존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합의를 요청받았을 때는 형사합의금과 보험사의 손해배상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확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처벌불원서 한 장이 형사 절차의 방향을 바꾸는 만큼, 금액뿐 아니라 문구까지 꼼꼼히 읽어야 한다.
5. 맺으며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공간이다. 법이 이 공간의 사고를 처벌 특례에서 빼 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신호등이 없다고 보호의무가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운전자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같은 비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8.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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