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칼럼 · 2026. 10. 29.

"깜빡이 켰는데 왜 안 비켜" 무리한 끼어들기 사고, 과실 6:4는 정당한가

방향지시등을 켜고 밀고 들어온 차량과의 접촉사고를 두고 진로변경 의무, 신뢰의 원칙, 과실비율 다투는 방법을 정리했다.

경기 안산의 시내도로에서 1차로를 달리던 운전자 앞으로 2차로의 SUV가 밀고 들어왔다. 끼어들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1차로 운전자는 뒤차 때문에 공간을 내줄 수도 없어 경적까지 울렸지만 결국 두 차가 부딪혔다. 블랙박스 영상을 소개한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SUV 운전자는 내리자마자 "깜빡이 켰는데 왜 안 비키냐"고 화를 내며 5:5를 요구했다.

양측 보험사는 상대 차가 잘 보였고 방향지시등을 켰다는 이유로 SUV 6, 1차로 차량 4의 과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1차로 운전자는 8:2면 몰라도 6:4는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방향지시등은 양보를 요구할 권리일까. 그렇지 않다.

1. 방향지시등은 허락이 아니라 예고다

가. 도로교통법 제19조 제3항

도로교통법 제19조 제3항은 차의 진로를 바꾸려는 운전자는 그 방향으로 오고 있는 다른 차의 정상적인 통행에 장애를 줄 우려가 있으면 진로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방향지시등은 진로를 바꾸겠다는 신호일 뿐, 옆 차로의 차에게 비켜야 할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신호를 켰더라도 옆 차로 차량과의 간격이 충분하지 않으면 진로변경 자체가 금지된다.

나. 법이 말하는 '끼어들기 금지'는 따로 있다

흔히 쓰는 '끼어들기'와 법 조문의 끼어들기는 다르다. 도로교통법 제23조의 끼어들기 금지는 법이나 경찰공무원의 지시에 따라, 또는 위험을 막기 위해 정지하거나 서행하는 차 앞으로 끼어드는 것을 말한다. 달리는 차로에 밀고 들어온 이번 사고는 보통 제19조 제3항의 진로변경 방법 위반으로 다뤄진다.

2. 과실비율은 누가, 어떻게 정하나

가. 기준표는 출발점일 뿐이다

보험사는 손해보험업계가 쓰는 과실비율 인정기준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진로변경 사고는 기본 비율에서 시작해 진로변경 차량의 신호 여부, 직진 차량이 속도를 줄일 수 있었는지, 두 차의 간격 같은 요소로 가감한다. 보험사 담당자의 '추정'은 협상안이지 확정 판단이 아니다.

특히 양측 보험사가 같은 결론을 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보험사는 빠른 종결을 위해 흔히 쓰는 비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내 쪽 보험사에 블랙박스 영상의 구체적인 장면, 예컨대 상대 차가 방향지시등을 켠 직후 곧바로 차로를 넘었다는 점을 짚어 다시 검토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근거를 갖춘 이의 제기만으로도 비율이 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법원은 피할 수 있었는지를 본다

결국 핵심은 직진 차량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느냐다. 법원은 상대가 교통법규를 지키리라 믿고 운전한 사람에게 상대의 돌발적인 위반까지 예견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3다3607 판결

신호대기 뒤 출발하는 승용차 앞으로 오토바이가 갑자기 진로를 바꿔 들어온 사안에서, 운전자는 상대도 법규를 지키리라 신뢰하면 족하고 갑작스러운 진로변경까지 예상해 정지할 주의의무는 없다며 승용차 운전자의 과실을 부정했다.

다만 신뢰의 원칙은 상대가 법규를 지키지 않으리라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옆 차가 이미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로에 걸쳐 들어오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면, 속도를 줄일 여지가 있었는지가 따져진다. 이번 사건에서 보험사가 직진 차량에 일부 과실을 둔 근거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반대로 뒤차 때문에 감속이 어려웠고 경적으로 위험을 알렸다는 사정은 직진 차량 쪽에 유리한 요소다.

3. 사고 당사자가 할 일

가. 직진 차량 운전자라면

블랙박스 원본을 바로 보관한다. 상대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켠 시점과 차로를 넘어온 시점의 간격, 내 차의 속도, 뒤차와의 거리가 과실을 가르는 자료다. 뒤차나 주변 차량의 영상을 확보할 수 있으면 더 좋다. 보험사 추정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 분쟁심의 절차를 이용할 수 있고, 그 결정에도 승복하기 어려우면 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

나. 진로를 바꾼 운전자라면

"깜빡이를 켰다"는 주장은 과실을 줄이는 요소일 뿐 면책 사유가 아니다. 사고 직후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하는 언행은 분쟁만 키운다. 차에서 내려 상대를 위협하거나 진로를 막으면 별도의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다. 사람이 다쳤다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은 업무상과실치상 사고라도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하고, 신호위반·중앙선 침범 같은 열두 가지 예외를 둔다. 일반적인 진로변경 위반은 이 예외에 들어 있지 않다. 같은 법 제4조에 따라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원칙적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지만, 피해자에게 생명의 위험이나 불구, 불치·난치의 질병 같은 중한 상해가 생겼거나 도주·음주 같은 사정이 겹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 맺으며

방향지시등은 양보를 부탁하는 신호이지 요구하는 신호가 아니다. 진로를 바꾸는 쪽이 안전을 확인할 1차 책임을 진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무리한 끼어들기가 줄어든다. 동시에 직진 차량도 상대가 들어올 것이 분명할 때는 한 발 물러서는 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9.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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