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군산의 한 골목길. 집 앞 주정차 가능 구역에 차를 세워 둔 차주는 행인에게서 "누가 차를 박고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려가 보니 운전석 쪽 범퍼에 흠집이 가득했다. 블랙박스에는 한 남성이 차를 긁은 뒤 흠집 제거제인 컴파운드를 바르고 떠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남성은 바로 앞에 차를 댔지만 그 차에는 연락처가 없었고, 차주는 30분을 기다리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29일 방송에 소개된 사연이다.
이후 상대 차량 보험사에서 보험 접수를 하겠다는 연락은 왔지만 운전자 본인의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 흠집을 지우려 애쓴 모습을 보면 사고를 낸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운전자는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1. 물건만 부쉈어도 사고 후 조치 의무가 있다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은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 운전자가 즉시 정차해 사상자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피해자에게 성명·전화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통사고에는 사람이 다치지 않고 물건만 부서진 경우도 들어간다. 주차하다 앞뒤 차를 긁은 것도 예외가 아니다.
의무의 내용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차에서 내려 피해 차량 상태를 확인하고, 차주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연락처를 확실하게 남기거나 경찰에 알리면 된다. 같은 조 제2항은 차만 손괴된 것이 분명하고 도로의 위험을 막고 소통에 필요한 조치를 했다면 경찰 신고 의무까지는 면제한다. 결국 핵심은 피해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리는 것이다.
2. 주정차 차량만 긁었다면, 처벌은 두 갈래
가. 인적 사항만 남기지 않은 경우
도로교통법 제156조 제10호는 주·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을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흔히 물피도주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군산 사례처럼 세워 둔 차만 긁고 연락처 없이 떠났다면 원칙적으로 이 조항이 적용된다.
사고 후 미조치를 처벌하는 무거운 조항인 제148조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정하고 있는데, 괄호 안에서 바로 이 경우를 따로 빼 두었다.
나. 도로에 위험을 남겼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다고 주차된 차를 들이받은 사고가 늘 가벼운 조항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도10878 판결주·정차된 차만 손괴한 것이 분명한 경우 인적 사항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제156조 제10호만 적용되지만, 그 밖에 사고 현장의 교통상 위험과 장해를 없애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제148조가 적용된다.
이 사건 운전자는 이면도로에서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은 뒤 더 움직이지 않는 자기 차를 도로에 세워 두고 전화번호 메모만 남긴 채 걸어서 집에 갔다. 경찰은 차량 통행이 어렵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견인까지 해야 했다. 대법원은 다른 차들이 도로를 지나갈 수 없게 됐다면 교통상 위험을 없앨 조치가 필요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가벼운 조항만 적용한 원심을 파기했다. 사고 후 조치 의무는 피해 회복이 아니라 도로의 안전과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함께 밝혔다.
3. 보험 처리하면 끝나는 문제일까
가. 보험과 형사책임은 별개다
상대 보험사가 수리비를 물어 준다고 해서 인적 사항을 남기지 않은 위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벌금 상한이 낮아도 처벌은 처벌이다. 블랙박스로 신원이 밝혀진 뒤에야 연락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연락처를 남기는 쪽이 법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훨씬 낫다.
나. 흠집 제거제를 바른 행동
흠집을 덮으려 한 행동은 사고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으로 읽힌다. 나중에 "부딪힌 줄 몰랐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피해 차주 쪽에서 보면, 남의 차에 마음대로 약품을 바르는 일은 원래 손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4. 피해 차주와 가해 운전자가 할 일
가. 피해 차주라면
블랙박스 원본은 바로 따로 저장하고, 주변 상가나 건물 CCTV는 보관 기간이 짧으니 서둘러 협조를 구한다. 신고할 때 사고 추정 시각과 장소, 상대 차량 번호를 정리해 두면 신원 확인이 빨라진다. 수리비는 상대 차량 보험사의 대물배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대차 비용이나 시세 하락분은 약관과 사정에 따라 따로 다퉈야 할 수 있다.
나. 가해 운전자라면
차에 쪽지를 끼워 두는 것만으로 충분한지는 따져 봐야 한다. 쪽지가 바람에 날아가거나 떨어지면 인적 사항을 제공했다고 인정받기 어렵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피해 차주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가까운 지구대·파출소에 사고를 알리는 것이다. 내 차나 파편이 도로에 남아 다른 차의 통행을 막고 있다면 위 판례처럼 무거운 처벌로 이어질 수 있으니, 차를 옮기고 위험물을 치우는 조치부터 해야 한다.
5. 맺으며
범퍼 흠집 하나는 큰돈이 드는 사고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연락처 한 줄을 남기지 않는 순간 단순한 접촉 사고가 형사 사건이 된다. 주정차 차량 물피도주를 따로 처벌하는 규정은 결국 같은 길을 쓰는 운전자들 사이의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30.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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